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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겨울호] ‘학교 밖 청소년’이 보여 주는 인권 문제

by 함께걷는아이들 2023. 1. 19.

학생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대응하다 보면 이상한 단어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바로 ‘자퇴 강요’라는 말이다. 자퇴는 학교를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인데, 강요한다니 그건 이미 자퇴가 아니지 않은가. 마치 ‘강제 자율학습’이란 말처럼 그 안에 이미 학교의 모순이 담겨 있는 셈이다.

 

내가 접했던 사례는 가령 이런 것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두발 복장 단속에 여러 번 걸리고 지각을 한 일 등의 사유로 벌점이 누적되었다. 이 학생은 학업 성적도 좋지 않았고 교사들에게 밉보인 상태였다. 학교에서는 벌점 누적을 이유로 중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선도위원회를 열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담임 교사는 ‘어차피 네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선도위에서 퇴학까지 받을 수도 있으니, 그전에 네가 스스로 자퇴해라.’라고 권했다. 퇴학당하는 걸로 기록되는 것보다는 자퇴하는 게 차라리 낫다면서.

 

이런 경우 그 학생은 학교를 자발적으로 나온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 의해 쫓겨난 것인가. ‘권고사직’이 해고의 일종이듯이 학교에서 자퇴를 권유받은 것도, 그 이전에 교사들에게 밉보이고 사소한 두발 복장 규정 위반 등으로 ‘행실이 안 좋다’며 큰 불이익을 받게 된 것도 모두 학교가 학생을 그만두게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매년 학교를 그만두는 청소년의 수는 약 3만 명에서 5만 명 정도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이유나 유형은 다양하고, 유학이나 입시 준비를 위해서 그만두는 경우까지 있기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중에 현재 학교 교육의 문제점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는 선택을 하게 되는 청소년들, 학교에서 밀려나고 쫓겨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는 부분이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문제이다. 이는 결국 학교 교육의 잘못 때문에 교육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즉 밀려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학생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인권 친화적이지 않은 학교의 규율과 폭력, 차별이다. 학생의 신체와 사생활을 단속하고 억압하는 규칙은 거기에 따르지 않는 학생에게 여러 불이익을 준다. 교사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이나 차별 행위도 드물지 않다. 이런 요소는 학교를 그만두는 직접적 계기는 아닐지 몰라도, 학교의 문화와 생활에서 녹아들지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배경 요인이다. 학생의 생활을 돌보고 교육을 신경 쓰기보다는 ‘학생다운’ 규율과 권위를 유지하는 데 더 주력하는 것은 취약한 상황의 학생들을 더욱 내몰게 된다.

 

다음으로, 폭력이나 차별, 괴롭힘 등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피해자를 지원하지 않는 학교의 모습이 학교를 그만두는 직접적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학교는 학생들의 생활의 밀도나 관계의 압력이 높은 편이다. 그런 환경에서 학교에서는 학생 간의 폭력이나 괴롭힘 등의 문제가 일어나도 이에 관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거나 학교를 신뢰할 수 없을 때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다. 또한 가정의 빈곤이나 학업성적, 외모나 장애,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의 차이가 학생들에 의한 차별과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많은 학교가 소수자성과 차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에, 더욱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학교의 수업이 무의미하게, 시간 낭비인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학업 성적과 입시 경쟁을 위주로 한, 높은 학업 부담의 중등 교육 상황은 학생들이 즐겁게 교육 활동에 참여하게 할 수 없다. 교육에서의 서열화가 누적되다 보면 결국 수업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입시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다수 학생을 배제하는 과정이 되어 버린다. 학교에 와서 단지 자리만 채우고 시간만 때우고 있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스스로 그만둔 청소년들을 왜 굳이 지원해야 하느냐는 식의 반문이 돌아오곤 한다. 일단 어린이·청소년은 물론 모든 사람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에, 학교 외의 방식으로도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더 깊게 살펴보면, 학교 밖 청소년 중 상당수가 학교 교육의 문제점으로 인해 학교에서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나아가, 학교 밖 청소년들의 존재는 학교 안에서 버티고 있지만 학교 교육이 무의미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많은 학생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앞으로는 학생들을 배제하고 밀어내고 쫓아내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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