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경험이 생생하다. 경찰과 도둑, 술래잡기, 그네에서 누가 더 멀리 뛰어내릴 수 있는지 내기를 하는 등 할 수 있는 놀이도 여러 가지였다. 과연 모든 어린이가 이러한 ‘놀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놀이의 중요성에 비해 한국은 학업에 치중하고 있기에 아동, 청소년의 삶의 질은 불균형성을 띤다. 이를 위해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놀이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논의에서 장애아동의 놀 권리는 갈 곳을 잃은 상황이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이러한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놀이는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다. 아동기의 놀이는 그 성장 과정에 있어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학업적 성취만을 중시하여 놀이의 결핍이 다분한 현황은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에 큰 문제를 야기한다. 놀이는 학습을 위한 오락이 아닌 삶에 있어서 요구되는 필수 권리인 것이다.
법적 근거와 현황
2000년대에 들어 권리로서 재조명이 된 놀이는 국제법, 국내법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국제법적 근거로는 유엔아동권리협약(1989)과 국제장애인권리협약(2006), 국내법적 근거로는 국내아동복지법(1981), 장애인복지법(1989) 그리고 장애인차별금지법(2007)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제법적 근거
장애아동의 놀 권리를 표기한 대표적인 국제법으로는 유엔아동권리협약(1989)과 국제장애인권리협약(2006)이 있다. 이는 각각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의 권리 보장, 모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 보장을 위해 만들어졌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휴식, 놀이 및 여가)에 따르면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연령에 맞는 놀이에 참여하며, 문화 및 예술 생활의 자유로운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에서 채택한 일반논평에 따르면 놀이를 단순히 아동기의 즐거움이라고 보는 것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발달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제시한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 제3조(일반원칙)에서는 장애인이 모든 삶의 부분에 있어 자립성을 가질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물리적 환경, 정보, 의사소통 등에 대한 자율적 접근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또한 동법 제7조, 제3조 5항(d)에 따르면 장애아동의 권리와 관련하여 접근성 측면에서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대우를 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이렇듯 해당 법 조항들을 볼 때 장애아동에 적합한 놀이환경이 보장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국내법적 근거
다음으로 국내법적 근거로는 국내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 국내아동복지법(1981)은 아동은 모든 차원의 차별에 있어서 자유로워야 하며,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동법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함을 명시한다. 또한, 동법 제30조(안전기준의 설정)는 국가 차원에서 아동복지시설, 아동용품에 대한 안전기준을 명확히 할 것과 아동용품을 제작, 설치할 때 이를 준수하도록 한다.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관련 인권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1989)은 장애인의 문화, 체육활동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환경에 대한 수월한 접근성을 강조하며 쟁애인차별금지법(2007)은 차별을 금지하는 경우를 명시해두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접근성은 기본적인 권리로 장애인이 공평한 기회를 보장받고 사회 활동에 있어서 적극성을 가지기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장애아동의 경우 놀이시설 접근권은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당연한 권리이고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이러한 국, 내외 인권법이 제시하는 바와 다르게 인권 사각지대의 장애아동에 대한 정책은 그 실효성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의 장애아동 놀이 서비스 실태
“뉴질랜드 유치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모두 운동장과 놀이터로 달려가 뛰어놀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학습에 있어서도 각자 진도에 맞추어 수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고 놀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세 발달지연 아동을 양육하며 뉴질랜드에 거주 중인 어머니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은 경쟁이 심하고 학습이 중요하여 아이들의 놀 권리가 박탈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놀이가 가지는 중요성이 크고 정부도 개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앞서 제시하였듯이 장애 아동을 고련한 정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어린이 제품, 놀이시설들은 비장애 아동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과 장애물없는시민연대가 지난 1월 발간한 ‘무장애 실내놀이터 매뉴얼’에 기반하면 공공형 실내놀이터 중 40%만 휠체어 출입이 가능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편의증진법’에서도 놀이환경을 포함한 대상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설치 기준이나 범위, 규격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놀이환경 관련 법규와 기준이 정비된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장애아동을 잘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기구는 어린이 놀이기구로 인정되지 못하기에 개발, 보급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장애아동의 놀 권리 차원에서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고려한 놀이기구 설치 지원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물론 꿈틀꿈틀 놀이터와 같은 무방애 놀이터도 존재한다. 통합 놀이터, 무장애 놀이터는 장애에 대한 차별을 받지 않고 모든 어린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남현경(2017)의 무장애 놀이터 공간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를 볼 때 접근의 제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놀이시설 바닥재가 모래로 되어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렵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호펜스도 없는 곳이 있어 다양한 장애 유형의 접근성과 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간인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시각장애의 경우에도 놀이활동 환경에 더 민감하여 재질이나 재료 변화를 알려줘야 하지만 이를 반영하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동 놀이시설에서 휠체어그네 설치가 불법인 상황이다. 즉,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상 휠체어그네는 ‘어린이 놀이기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해 산업부는 휠체어그네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행정안전부는 휠체어그네 설치 및 관리를 위해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을 개정해서 2023년 안에 시행할 예정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휠체어그네의 제한을 푸는 것이 곧 무장애놀이터 설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 등에 장애어린이가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책임을 묻고 설치비용을 지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법적, 제도적 개선 방안
앞선 현황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수적이다. 우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이야기하는 접근성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일부 편의시설을 제외하고는 장애아동이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제한이 있다. 또한 장애아동을 배려하는 시설기준이 미비한 상황이기에 실질적인 권리보장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아동과 관련하여 제20조와 50조에서 간접적으로 이를 다루고 있으며 환경과 시설은 직접적인 논의에서 제외된다. 시설의 접근성과 안정성은 중요한 문제이기에 이를 중심으로 놀이환경 기준을 별도로 제시하고 동등한 주체로서 참여 보장 공간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또한 비슷한 문제를 지닌다. 해당 법에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의무만 명시되어 있고 장애아동을 위한 놀이환경이나 시설 측면에 있어서 안전기준이나 접근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지방자체단체 차원에서 각 사정에 맞는 적절한 정책 추진도 필요하다. 장애 정도나 환경 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이루어져야 문제해결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장애아동 학부모님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도 공공 놀이시설 장애인 할인이 되고 장애인 화장실 휠체어 대여 등 혜택이 잘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공 놀이 시설이 여러 곳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특히 장애 아이들의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시설 자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외국에는 시설이 더욱 다양하게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하셨다. 해당 인터뷰와 현재 한국의 무장애 놀이터가 지니는 한계를 고려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래에서부터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였을 때 보다 효과적인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인식적 측면
발달장애 아이를 둔 백선영(41)씨는 “아이가 미끄럼틀 앞에서 내려가지 않고 주저앉아 버린 적이 있다. 장애가 있다며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모들이 ‘빨리 데리고 가라’며 윽박질렀다”라는 경험을 이야기 했다. 이를 볼 때, 놀이시설 개선에 앞서 장애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장애아동을 대하는 현 사회 양상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무장애 놀이터의 장애아동 이용률은 비장애아동에 비해 현저히 낮은 점을 보인다(남현경,2017). 장애아동의 경우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 인지, 신체, 심리 치료시설에 있어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로 드러났다. 해당 연구 결과를 통해 살펴볼 때, 장애아동이 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적합한 놀이 공간의 미비도 있겠지만 교사나 부모 중심으로 교육과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장애아동을 위한 양질의 놀이환경이란 놀이에 필요한 물리적인 공간과 더불어 사회적 환경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장애아동의 놀이시간은 치료시간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다분하다. 놀 권리를 침해당하고 자발적인 놀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아동들이 주체적으로 흥미에 따라서 선택을 하고 참여를 하는 진정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권리 실현을 위해 사회적 관심과 성인들로부터의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기자단 7기 김민지
▷참고자료
권미은. "법적·제도적 측면에서 장애아동의 놀 권리 탐색." 국제문화연구 14.2 (2021): 101-122.
남현경,김아연,Nam Hyeon-Gyeong,and Kim Ah-Yeon. "장애·비장애인 통합 환경으로서의 통합공원 조성을 위한 관련 가이드라인 분석." 韓國造景學會誌 45.2 (2017): 89-100.
『아동을 권리주체로 존중하는 사회를 위한 기본법 제정 릴레이 아동권리포럼. 3회, 아동이 누려야 할 자유: 놀 권리와 쉴 권리』, 서울 : 아동권리보장원, 2022
한국장총,“왜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장애아이들이 없을까?”,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2021.11.22.
김은빈, ““놀 곳 없어요” 어린이날도 못 누리는 장애아동“, 쿠키뉴스, 2023.05.05.
정혜영, ”우리나라 장애 어린이...‘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소셜포커스, 2018.09.27.
이용석, ”우리나라 장애 아동도 놀이터에서 맘껏 놀 수 있어야“, 더인디고,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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