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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기자단 기사

의제강간 연령 상향 조정, 더 많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by 함께걷는아이들 2020. 8. 4.

 

 

N번방 사건이라 불리는 끔찍한 성착취 사건 이후, 지난 5월 일명 ‘N번방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된 형법 및 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법 등을 포함하여 6개의 법률이 개정된 것이다. 이제 유포하겠다는 협박이나 강요하는 행위만으로도 처벌을 받게 될 수 있으며, 성착취 영상물 소지나 유포에 대한 처벌 수위는 더욱 강해졌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한 가지 있다. 바로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의 상향 조정이다.

 

 

의제강간 연령이란

미성년자 의제강간이란, 성교 동의 연령을 넘지 않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을 경우 미성년자의 동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강간으로 보아 처벌할 수 있음을 말한다.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기 전 한국의 의제강간 연령은 13세였다. 즉 만 13세를 넘긴 청소년과 성관계를 맺더라도 ‘상호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의제강간 연령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혼 풍습이 잔존하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나 혼전 성교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14세에서 16세, 혹은 그 이상을 의제강간 연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의제강간 연령에 대한 상향 조정의 논의‘만’ 이어진 게 벌써 67년째였다. 그러다 2020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67년 만에 의제강간 연령이 만 13세 미만에서 만 16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의제강간 연령의 상향 조정을 둘러싼 의견은 다양하다. 당연히 걱정 어린 시각도 존재한다. 먼저 의제강간 연령 상향 조정은 오히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보호’라는 명목하에 청소년을 성에서 아예 배제돼야만 하는 존재로 만들어 성적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처벌 대상을 만드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만14세 여성과 만18세 남성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면 처벌대상이 아닌데, 1년이 지나 여성이 15세, 남성이 19세가 돼서도 성관계를 유지하면 19세 남성이 처벌대상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조치였다

몇몇 회의적인 시각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제강간 연령 상향 조정은 필요했던 조치라 말하고 싶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조정을 통해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것은 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적 자기결정권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 능력이 형성될 때까지, 그들이 피해 입지 않도록 지켜주기 위함이다.

 

피아제의 발달 이론에 따르면 아동의 인지 능력은 연령 변화에 따라 질적 차이를 보이게 된다. 특히 11세에서 15세까지 ‘형식적 조작기’라고 부르는데, 이때 아동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가상의 상황에 대한 추상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추게 된다.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의제강간 연령을 만 15세나 16세로 정한 것은 그 시기가 추론 능력을 습득하는 형식적 조작기이기 때문” 이라 언급하며 “N번방 사건에서 유독 중학생 피해자가 많았던 이유는 그 나이대의 아이들의 대부분이 아직 이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관계는 반드시 상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진정한 상호 동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양측 다 성숙한 자기 판단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인과 미성년자의 판단력은 대부분 질적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판단력의 차이는 위계 관계를 형성하고 한 쪽이 다른 한쪽에게 휩쓸리게 만든다. 그렇게 휩쓸린 상황에서, 아이가 동의한다 한들 정말 그것을 ‘동의’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묘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확실한 수

여타 법률이 처벌의 강도를 조절하기 위한 법률이라면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처벌의 확실성을 좌우하기 위한 법이다. 미성년 피해자가 용기 내어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혔는데도 가해자가 상호 동의를 핑계로 처벌을 피해가는 일이 없도록, 즉 확실하게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법률이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방어책으론 기능할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는 더더욱 교묘해졌다. 어플을 사용하고, 비밀 사이트를 운영하고, 추적이 어려운 외국 계정을 이용하는 등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조악한 방법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겨우 검거되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통해 빠져나가는 사례를 우린 수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처벌이나마 보장할 수 있게 되어야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정은경, "의제강간죄 연령상향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06

2) 권김현영, "미성년자 의제강간, 무엇을 보호하는가?", 인물과사상, 2015-11

3) 김희진,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으로… 조주빈 첫 공판 앞두고 모인 여성들”, 경향신문, 2020-06-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111548001&code=940100#csidxae48ca0dc6578cf8f7b10b69efe328e

4) 김계연, “‘N번방 방지법’ 국무회의 통과… 불법촬영물 소지만 해도 처벌”, 연합뉴스, 2020-05-12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2104900004?input=1195m

5) 조서영, “[현장에서] 이수정 “성폭력 핵심은 동의여부…의제 강간 연령 상향해야”, 시사오늘, 2020-06-24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708

6) 여성가족부 공식블로그, 의제강간 연령,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 https://blog.naver.com/mogefkorea/222029333291

 

 

* 본 기사는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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