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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기자단 기사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 청년맞춤제작소 in 오산의 활동가 3人을 만나다

by 함께걷는아이들 2020. 9. 4.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

청년맞춤제작소 in 오산의 활동가 3人을 만나다

 

 

  쏟아지는 비에 우산이 소용없었다.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가 그 위세를 증명하는 듯 오산으로 가는 길 내내 비가 무섭게 내렸다. 분명 폭우와 무관하지 않을 지하철 고장으로 인해 급히 열차를 옮겨 타면서 어쩌면 이번 만남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흠뻑 젖어 도착한 청년맞춤제작소 in 오산 (이하 제작소)에서 해사한 얼굴로 반겨주는 세 명의 활동가를 보자마자 모든 우려와 걱정이 수그러들었다. 창밖은 찝찝한 공기가 가득했지만 곽예슬(이하 곽), 김시연(이하 김), 조선희(이하 조) 활동가들과의 대화는 더할 나위 없이 산뜻했다.

 

 

 

 

이번이 제작소에 두 번째 방문이라 찾아오는 길이 어렵지 않았어요. 저번 방문에서도 느꼈지만 내부가 참 아늑한 느낌을 주는데요, 방마다 붙은 ‘지금’ ‘여기’ ‘우리’ ‘모두’ ‘함께’라는 명칭도 독특해요. 내부 공간과 분위기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은데,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나요?

 

김: “서울에 청년 공간이 되게 많은데 그런 곳에 가보면 대부분 취업 준비나 토익 공부 같은 것을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청년분들은 그곳에서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거나 눈치를 보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이곳만큼은 청년분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빈백에 누워 있어도 되고, 핸드폰 충전하면서 게임을 해도 되고, 라면을 끓여 먹거나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봐도 되는 그런 편한 공간이요.

 

곽: “그리고 원칙은 아니지만, 누군가 오면 정말 바쁘지 않은 이상 모두가 맞이하러 나가요.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실 수 있도록 오고 가실 때 나와서 인사하고 있어요”

 

 

이 공간이 편안하고 쉼터 같았던 이유가 있었군요. 함께걷는아이들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인데 청년을 대상으로 제작소 사업을 진행하는 게 의아하기도 했는데요, 제작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곽: “함께걷는아이들에서 엑시트나 청소년 자립 팸 이상한 나라 등을 통해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만날 곳이 필요했어요.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스무 살이 넘으면 필요한 시설이나 자원을 지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청소년뿐 아니라 청년들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제작소가 생긴 것 같아요.”

 

조: “거리에 노출되었던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금융 문제나 주거 문제에 당면하게 되는데, 이때 지지망이 없어 위험이나 어려움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지원해 주는 기관들은 점점 끊기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위험부담은 청년들이 오롯이 감당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청년들을 위한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이런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어요.”

 

 

청소년 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청년 지원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던 거군요. 그렇다면 제작소에서는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있나요?

 

김: “저희는 청년 맞춤형 지원 사업을 하고 있어요. 청년마다 환경과 필요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다양한 지원을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식비가 지원되고 필요한 분들은 교육 훈련을 요청할 수 있어요. 사람에 따라 영어 학원일 수도 있고, 온라인 강의 수강일 수도 있고,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일 수도 있고, 요리 학원일 수도 있죠. 일 경험을 원하시는 분들은 저희가 사회적 기업과 연결해서 인턴십 비용을 지원하기도 해요. 그리고 관계를 지속하면서 심리 상담이 필요한 분께는 상담을 연결하기도 하고, 금융 문제가 있으면, 관련 센터나 자원 체계를 연결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함께하는 자립을 위해 청년분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자조 모임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럼 세 분께서는 각자 사업의 어떤 부분을 맡고 계신 건가요?

 

김: “저희는 현재 총 45명의 청년분을 만나고 있는데요, 특별히 더 신경 쓰고 긴밀히 연락하는 사람을 나눠서 청년별로 담당자가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딱 선을 나눠서 일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청년을 중심으로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시스템이에요. 그 안에서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을 나눠서 하고 있어요.”

 

‘청년을 중심으로 전체가 함께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는 말씀이 제작소의 운영 방식뿐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 또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사업에 대해 여쭤봤다면 이젠 활동가분들 개인의 생각과 경험을 더 들어보고 싶어요. 제게 주신 제작소 워크숍 결과지를 보면 제작소의 운영 철학과 가치, 활동가의 원칙 등이 정리되어 있는데요, 이 중에 활동가분들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원칙이나 가치는 무엇인가요?

 

김: “저는 ‘사회와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능동성’을 꼽고 싶어요. 청년분들이 가진 다양한 문제들은 개인이 덜 노력하거나 뭔가를 잘못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로 인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때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기보다 사회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하자는 원칙을 가지고 청년분들을 만나고 있어요.”

 

곽: “저는 ‘있는 그대로 수용’ 이요. 지원할 때 담당자의 속도와 청년분들의 속도가 다를 때가 있는데, 청년분들의 생각을 묻고 속도를 맞춰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랬을 때 청년분들이 온전한 성취감을 느끼긴 어려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청년분들의 속도를 맞추는 게 어렵기도 하고 방임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하지만, 각자의 상황과 속도를 존중하며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 “저희가 만나는 청년분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다양한 정보에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다양한 정책과 정보들, 그리고 네트워크들을 누군가와 함께 찾아보고 시도해보는 게 중요한데 혼자면 알아도 어렵고 몰라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곳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누군가와 함께 더 많이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이런 접근의 경험들이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청년분들에게 자원이 될 거라 생각해요.”

 

 

세 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원칙을 ‘사회와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능동성’, ‘있는 그대로 수용’, ‘주도적으로 네트워크를 맺고 연결’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작소에서 활동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나요?

 

김: “특정 개인이 드러날 수 있어 조금 조심스럽네요. 활동하면서 주거 문제를 가진 청년분들을 만나게 돼요. 청년의 어려움을 사회 전반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그분들의 주거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자원 체계를 연결하고 함께걷는아이들의 청소년 주거권 네트워크에 현장 단위로 참여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앞서 말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와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능동성’을 함께하는 분들이 생각나요.”

 

곽: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자조 모임을 진행했었어요. 카톡 방을 만들고 거기서 하고 싶은 것을 신청하면 저희가 그걸 보내 드려서 함께 결과물이나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는데, 저희도 익명으로 참여했어요. 저희가 뭔가를 올린 후에 청년분들이 친절하게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셨을 때 느낌이 새로웠어요. 그 경험을 통해 저희도 응원받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고 이렇게 동등한 관계를 맺는 게 정말 좋다는 생각을 다시 했던 것 같아요.”

 

조: “청년분들의 개인적인 이슈가 저희의 지원을 통해 해결되거나 종결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함께 대화하고 공감받는 것만으로 힘을 얻어 간 청년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다음에 어려웠던 이야기를 쉽게 꺼내기도 하고 힘든 점이나 고민되는 점을 나눠주기도 했어요. 처음에 한 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후에는 좀 더 쉽게 말을 꺼내 주었던 청년들이 생각나요.”

 

 

아무래도 활동하시면서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에 직접 들어가 함께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와 더불어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김: “이 사업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샘플이 없어서 어려운 점이 있어요.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사업의 모든 순간이 다 처음이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에너지도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청년분들도 용기를 내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주시기 때문에 저도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데요, 청년분들의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죠.”

 

조: “청년분들의 어려움이 저희가 단순히 공감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닐 때 제일 어렵고 힘든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아쉬움만 남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곽: “처음에 시작할 때 지원이 된다고 했던 것들이 더 다양했어요. 그런데 다른 주체들과 함께하면서 지원 내용이 조금 달라졌어요. 더 많고 다양한 자원들이 지원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는데 막상 안 되는 부분이 아쉽죠. 청년분들의 어려움을 들으면 책임감이 드는데 이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할 때 괴롭고 힘든 부분이 있어요.”

 

 

 

청년맞춤제작소 in 오산 개소식 모습(2019.10.14.)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있나요?

 

곽: “힘을 주는 원동력은 사람들이죠. (일동 웃음) 물론 청년분들과의 경험도 힘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함께 고민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저희가 당면하는 문제들은 늘 한계가 있지만, 혼자 끙끙대기보다 같이 논의하고 방법을 찾아볼 수 있어서 힘을 얻어요. 이 힘듦이 혼자만의 힘듦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한계를 마주했을 때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청년분들과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고민하고 시도하는 청년분들을 볼 때 고마움을 느끼고 힘을 얻어요.”

 

김: “보통 저희가 청년분들께 안부를 묻는데, 관계가 생긴 후에 그분들이 먼저 저희의 안부를 물으시기도 해요. 그럴 때 힘을 얻어요. 앞서 두 분이 말씀하셨듯이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가치관이 맞아서 지치는 순간마다 ‘이게 중요한 가치잖아. 우리가 이건 잊지 말고 가야 하잖아.’라고 말하며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그걸 향해 가려고 노력하는 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더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활동가분들께 서로의 존재가 큰 힘이자 응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제작소의 큰 자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오늘의 만남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제작소의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제작소의 목표나 활동가 개인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곽: “개인의 목표를 합치면 제작소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요? (웃음) 저는 청년들이 같은 경험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을 이 공간에서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요. 청년분들도 그걸 원하시더라고요. 그게 저희가 자조 모임을 처음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조: “가끔 청년분들이 ‘나만 잘 안되는 것 같다’ ‘나만 운이 안 좋은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에요. 청년분들이 이 사실을 알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제작소를 통해 알아 가셨으면 좋겠어요.”

 

김: “청년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신뢰받고 지지받는 경험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제작소에서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시간이 흘러서 청년분들이 지금을 되돌아보았을 때, 이곳에서의 경험이 사회를 안심하고 살아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이들은 청년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하고 유의미한 사업들이 사회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제작소를 통한 청년들의 도전이 실패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 개인에게는 실패로만 남지 않고 다음번의 성공을 끌어낼 힘이 되기 때문에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하는 일은 청년들에게 더 많은 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한 시간여의 만남 후에 뇌리에 오래 머물던 단어는 ‘함께’다. 글에 다 담지 못한 이들의 말에는 ‘함께’가 정말 많이 등장했다. 그것이 이들이 바라는 사회가 아닐까. 제작소 방마다 붙은 이름처럼 지금, 여기, 우리, 모두, 함께 하는 사회 말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계절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이들은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청년과 ‘함께’하고 있다. 함께하는 사회를 위해 함께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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